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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의 현 주소와 나아갈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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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사람은 어떻게 태어날까요


말을 습득한 아이는 질문 덩어리입니다. 톨스토이의 인간의 삶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담은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전에 아이가 높은 확률로 던질 질문은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입니다.

4년 전 트위터를 시작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꾸준히 회자되는 일화가 있습니다. 초등학생인 아이가 아빠에게 "섹스해봤어?"를 묻자, 아빠가 '아직'이라고 답했다는 이야기입니다.분명 성관계를 통해 얻은 아이지만, 아이에게 출생 과정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모의 복잡한 심정을 담고 있죠. 최근 여성가족부에서는 초등학생 성교육을 목적으로 덴마크 도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선정해 논란을 낳았는데요.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아이가 소화하기엔 지나치게 적나라한 그림과 묘사'라고 비판했습니다. 서양의 것이면 무조건 수용하는 행태도 지적했죠.

② 사람은 이렇게 섹스를 합니다


제가 섹스의 원리를 이해한 시점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요. 친구들과 방과 후 도서실에서 읽은 그림책 덕분이었습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진짜' 과정을 알려준 책이었죠.

남녀가 성기를 퍼즐처럼 맞추고 부둥켜 안고 있는 삽화는 12살 짜리가 이해하기 충분했습니다. 일러스트의 선을 눈으로 따라가던 친구들의 숨소리만 아련히 남아있네요.학부모가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과거부터 내려온 허술한 성교육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발이 달린 정자가 여자 몸으로 들어가는 줄 알았다'부터 '정자와 난자의 믹싱에 대해 고민하다가 키스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었다' 등등.

한편 성교육의 초점을 생명의 탄생에만 맞추는 시각에 갑갑함도 느꼈습니다. 섹스의 목표는 임신과 출산뿐이 아닙니다. 쾌락도 될 수 있죠. 인간은 발정기가 따로 없이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입니다.

일례로 2019년 우리나라 합계 출생율은 0.92명입니다. 출산이 섹스의 유일한 목표라면, 모든 사람의 성관계 횟수는 평생 1회에도 못 미칠 것입니다.출생율이 1명에도 못 미치는 상황인데 성교육을 출산에만 맞춰야 할까요. '성교는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지는 숭고한 행위'라는 프레임은 현실을 반영하기엔 턱 없이 부족합니다.


③ 왜 우리는 섹스를 할까요


2018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지침에 따르면 9~12세 아이의 학습목표는 '성기가 질속에 사정하는 성관계 결과로 임신할 수 있음을 안다'입니다. 궁금했습니다. 그럼 9세 이하 아동에겐 뭘 가르칠까. '자신의 성기를 만지면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자위행위의 특성을 알려주는 것이 목표라고요. 예상보다 구체적이었습니다.

목표가 그렇다면 목적은 뭘까. 목표는 목적을 이루려고 세우는 종착지이니까요. 가령, 세상에 아픈 사람이 없고 그들이 건강한 삶을 살길 바라는 목적이 있다면,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의사라는 직업을 목표로 삼을 수 있겠죠.

결국 성교육이 난항을 겪는 이유는 성교육의 목적에 대한 사회구성원간 합의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최대한 늦게 성에 눈뜨길 바라는 보호주의적 태도와 쾌락만으로도 섹스할 수 있지만,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입장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자리하니까요.

인간이 '성적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넥스트 스텝인 성적 자기결정권은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요. N번방 사건은 성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속성임을 외면한 채 음란한 대상으로 치부해 온 어른들 탓일지 모릅니다.

④ 우리는 모두 성적 존재입니다


성은 인간에게 내재된 특성입니다. '성적 존재’라는 태생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만큼 '사람은 어떻게 나는가'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전자가 청소년기부터 묻기 시작하는 삶의 가치에 대한 물음이라면, 후자는 생의 근원에 대한 물음이니까요.

공부해서 똑똑하고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되라, 말하기 전에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는 단순한 이야기부터 꺼내야 합니다.

섹스를 가르치는 방법에 앞서 어른들이 고민해야 할 지점은 성교육의 목적입니다. 성범죄를 예방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한 성교육과 행복 추구의 일환인 성교육은 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성은 단순히 사회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섹스에는 분명 임신과 쾌락 중독 외에 한 인간이 성적 존재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있으니까요.



에리히 프롬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는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요. 섹스로 치환해도 무방합니다. 섹스는 참여하는 것이지 속수무책으로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부터 아이들이 성적 존재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들에게 주체적으로 자신의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관계를 <뭣 모르는 애들이 일으키는 사고와 뒷수습> 쯤으로 여기는 태도를 고치는 일에서부터 성교육은 시작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몸에 대한 존중을 배운 아이들은 타인의 몸에 대한 존중도 체득하게 될 겁니다.



  • 참고 | 에리히 프롬, 황문수 역,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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